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러시아 제국 관계 (문단 편집) === 19세기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그레이트 게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상당수의 프랑스 귀족들이 영국이나 러시아로 피난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서로 프랑스를 피해 밀무역을 하며 협력하던 양국은 이후 [[나폴레옹 제국]]이 몰락하자 서로 견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릴 정도로 영토가 넓었다. 러시아 제국은 알래스카를 포함해서 유럽, 아시아 북아메리카에 걸쳤던 나라이기도 했다. 러시아가 흑해에서 세력을 급격하게 팽창하는 것을 우려한 영국은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오스만 제국]]을 지원하였고 나비효과로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넘겼다. 중앙아시아 방면에서는 인도를 차지한 영국과 중앙아시아를 차지한 러시아 제국 사이에서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이 일어났다. 러시아 제국이 아프가니스탄 북부 일대의 [[우즈베크]]계 칸국들을 점령하자,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에 대비할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 이후, [[듀랜드 라인]]이 생겨나면서 [[파슈툰족]]의 거주지가 나뉘어졌다. 중동에서는 19세기 초반 러시아 제국이 캅카스로 남하하면서 이란 [[카자르 왕조]]로부터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를 해방하고, 카자르 왕조의 근거지에 해당하는 [[아제르바이잔]] 일대를 정복하였다. 한 편 영국은 카자르 왕조 남쪽 [[페르시아 만]]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인 [[호르무즈]]를 장악하였다. 양국 사이의 상호 견제는 동아시아에서도 일어났다. 19세기 말부터 만주와 [[한반도]]를 두고 러시아 제국의 영향력이 커졌다. 러시아 제국은 [[제주성 위협사건]]을 일으켰고 영국은 [[거문도 점령 사건]]을 일으키는 등 한반도의 일부를 점령했다. 19세기 말에 영국과 러시아 제국은 [[영러협상]]을 통해 그레이트 게임을 종식시키로 합의했다. 영국과 러시아 제국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러시아인 및 러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농노제의 비인간성을 저격하는 [[이반 투르게네프]]의 《사냥꾼의 수기》가 서구권에서 반향을 일으켰는데, 특히 영국에서는 자신들의 적국인 러시아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서 해당 책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투르게네프는 19세기 중반 기준으로 서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러시아 작가였는데, 이러한 자신의 입지를 활용하여 다른 러시아 작가들이 독일과 영국, 프랑스 출판사들과의 계약을 주선하는데 힘을 써주었다. 투르게네프의 주선 덕분에 곤차로프, [[톨스토이]] 같은 러시아 작가들이 유럽의 문학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 보통 작가 사이에는 라이벌 의식이 있기 마련이지만 투르게네프가 [[도스토예프스키]]는 물론 톨스토이와도 종종 개인적으로 불편한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방해는 커녕 오히려 적극 홍보해주는 대인배이기도 했다.] 즉 양국간의 적대 관계는 오히려 양국 사이의 문화적 교류를 촉진시켰다. 러시아인 귀족들과 인텔리겐치야 계층 역시 영국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력이 커지며 기존에 공부하고 사용하던 프랑스어 외에도 영어 사용과 학습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반 러시아 제국 귀족 가문 출신 문인이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집에서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사용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